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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3월 컬럼] 예수의 사랑으로 일어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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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623회 작성일 24-03-02 0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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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사랑으로 일어서라

 

저출산 고령화 사회로 접어든 우리 사회는 모든 영역에서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특히 한국교회 다음세대는 코로나(Covid19) 팬데믹으로 인해 막대한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사실 위기는 이미 20여 년 전부터 예견된 것이었다. 다음세대에 대한 진정성 있는 대안 마련과 노력은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극복할 수 있는 당장의 처방은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마냥 손을 놓고 무너져가는 다음세대의 현실을 지켜만 볼 수 없다.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하고 회복해야 하는가? 우리 모두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그 현장에 다시 서야한다.

 

예수님은 스승을 따르다가 실패를 했던 베드로에게 찾아가서 잃어버린 사랑과 사명을 회복시켜주신다.(21:15~17) 우리는 이러한 예수님의 간절한 요청 앞에 다시 서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코로나 이후 진지한 성찰과 결단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는 주님의 말씀 앞에 우리가 진정성 있는 답변을 할 수 있다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으리라 본다.

예수의 십자가 사랑을 깨닫지 못했던 베드로는 주님의 발 씻음을 거절하는 어리석은 행동을 보였다. 그는 말하기를 주께서 왜 내 발을 씻나이까?”(13:6) 주님은 말씀하신다. “내가 네 발을 씻어야 너와 내가 상관이 있느니라.”(13:7) 우리는 주님과 상관이 있어야 한다. 이것은 발 씻음의 체험, 즉 십자가를 통한 사랑의 체험이 있어야 함을 의미한다. 바로 이 사랑의 관계의 회복을 위해 주님이 실패한 베드로에게 찾아오신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물으신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21:15)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사랑하느냐?"는 질문 속에는 "맡겨진 양떼들을 사랑하라"는 뜻이 담겨져 있다. 베드로는 주님으로부터 세 번이나 반복되는 말씀인 "내 양을 먹이라"는 명령을 받은 후부터 순교할 때까지 이 명령을 잘 지켰다.(벧전5:2~3) 부활하신 주님이 디베랴 바닷가에서 베드로를 다시 부르신 목적은 주님의 양떼들을 그에게 맡기기 위함이었다. 주님이 바울을 부르신 목적도 이방의 양떼들을 그에게 맡기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주님은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 자와 자신의 양떼를 사랑하지 않는 자에게 결코 자신의 양떼를 맡기지 않으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거창하게 주의 일을 위해 거대한 계획을 세워 보겠다는 말보다 자신이 주님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를 철저히 살펴야 할 것이다.

 

두 가지 관점에서 살펴보자.

첫 번째, 우리는 이곳에서 사랑을 잃어버린 베드로를 본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수제자였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이름도 지어 주셨고 칭찬도 많이 해 주셨다. 그러나 베드로는 지금 믿음도 사랑도 다 잃어버린 실패자가 되고 말았다. 주님이 십자가를 지고 가실 때 베드로는 멀찍이 따라가다가 도망을 쳤다. 주님이 심문을 당하고 재판을 받으시는 바로 그 시각에 주님을 변호하기는커녕 주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하고 저주까지 했다. 그런 수제자는 이 세상에 없을 것이다. 베드로는 나름대로 자기의 잘못을 뉘우치며 회개를 했지만 주님을 부인한 죄책감에서 벗어나기가 힘이 들었다. 주님에 대한 충성도 믿음도 사랑도 다 사라져 버린 것 같았다.

부활의 주님을 두세 번 만나 뵈었지만 베드로는 여전히 다시 일어날 수가 없었다. 베드로는 이렇게 실패와 좌절과 자포자기에 빠지고 말았다. 그리고는 다른 여섯 제자들을 데리고 갈릴리 바다로 돌아가서 밤이 새도록 그물을 던졌다. 그러나 물고기를 단 한 마리도 잡아 올리지 못했다. 베드로는 몸도 마음도 지쳐서 일어날 수가 없었다. 믿음도 사랑도 소망도 모두 상실한 텅 빈 실패자가 되고 말았다. 왜 베드로가 이렇게 되었는가?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그는 기도해야 할 때에 기도하지 않았다. 예수님이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고 말씀했을 때 베드로는 누워서 잠만 자고 말았다. 그리고 그는 자신을 너무 과신했다. 자신을 너무 믿었고 자신의 충성심을 나타내려는 교만에 빠졌다. 그는 너무 충동적이었다. 너무 급하게 좌절하고 급하게 돌아섰다. 이런 상황에서 주님은 찾아오셨다. 지금 우리 또한 이런 상황에서 주님의 오심이 필요한 것은 아닌가?

 

두 번째, 우리는 이곳에서 사랑을 회복시키는 예수님을 본다.

예수님이 베드로를 찾아 오셨고, 믿음과 사랑과 소망을 상실한 베드로를 찾아 오셨다. 믿음을 회복시켜 주시기 위해서 찾아 오셨고 사랑을 회복시켜 주시기 위해서 찾아오신 것이다. 베드로를 찾아오신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제일 먼저 하신 말씀은 베드로의 원래 이름을 부르신 다음 "네가 나는 사랑하느냐?"라는 단도직입적인 질문이었다. "네가 왜 나를 부인했느냐?"가 아니었다. "네가 왜 나를 버리고 이곳으로 고기 잡으러 왔느냐?"가 아니었다. 베드로를 찾아오신 예수님께서 제일 먼저 하신 말씀은 그의 실수와 잘못을 지적하시는 책망의 말씀이 아니었고 사랑에 관한 말씀이었다. 사랑이 모든 문제의 근원이기 때문이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는 이 사랑의 질문 가운데서 베드로는 세 가지 사랑을 확인하고 회복할 수 있었다.

먼저, 자기를 향한 주님의 사랑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말의 핵심베드로를 향해 "너 나를 지금도 최고로 사랑하지?" 라고 물으신 것이다. 예수님이 왜 배신자 베드로의 사랑의 고백을 그렇게도 애타게 듣고 싶어 하셨을까? 베드로를 너무나 사랑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질문 속에는 "나는 지금도 변치 않고 끝까지 너를 사랑하고 있는데 너도 지금 나를 사랑하고 있는 거지?" 라는 애타는 물음이 포함되어 있었다.

 

주님을 향한 자기의 사랑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예수님의 질문 가운데서 베드로는 주님을 향한 자기 자신의 사랑을 회복할 수가 있었다. 사랑을 받을 때 사랑이 회복된다. 베드로는 자기 가슴 속에서 주님을 향한 사랑이 뜨겁게 솟아오르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사랑은 일방적인 것이 아니고 쌍방적이다. 사랑은 서로 주고받기를 원한다. 주님이 베드로를 사랑하셨을 때 베드로는 주님을 사랑하고 싶어졌다. 베드로는 떨리는 마음으로 이렇게 사랑을 고백했다.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21:15) 베드로는 주님을 향한 자기의 사랑을 회복할 수가 있었다.

 

그리고 양무리를 향한 자기의 사랑을 회복시켜 주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라는 주님의 질문은 양무리를 향한 베드로의 사랑을 회복시켜 주었다. 왜냐하면 주님의 사랑의 질문은 "내 양을 먹이라"는 분부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주님은 베드로의 사랑이 구체적인 실천으로 나타나야 한다고 말씀했다. 베드로는 한 동안 주님에게서 떠났고, 양무리에서도 떠났었다. 그에게는 모든 것이 귀찮게만 여겨졌었다. 그런데 주님은 베드로의 가슴 속에 양무리를 향한 사랑을 새롭게 불어 넣어 주셨다. "네가 나를 사랑한다면 내 양을 먹이라"고 가르쳐 주셨다. 그리고 베드로의 영광스러운 미래에 관한 예언의 말씀까지 해 주셨다.(21:18)

 

4차 산업혁명시대, 인공지능 시대, MZ세대 등 변화무쌍한 이 시대의 흐름 가운데, 우리에게 맡겨주신 어린 양 떼들을 지키는 데에는 지식도 새로운 문화도 적응해야 한다. 그러나 그런 일에 앞서 예수의 사랑으로 우리의 심령이 뜨거워져 있다면 이 모든 상황을 헤쳐 나가는 본질적인 능력이 됨을 믿어야 한다. 지금은 우리를 찾아와서 따뜻하게 품어주시는 예수의 사랑으로 일어나야한다. 그리함으로 주님이 주신 능력으로 맡겨주신 다음세대를 끝까지 지키며 섬기는 사명자가 되기를 소망한다.

 

*황성건 목사 | 본회 대표, 제자로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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